우리가 읽은 심청전은 어느 판본일까: 교과서 속 강상련, 뺑덕어미의 등장, 심봉사의 다른 이름
심청전은 80여 종의 이본이 전한다. 교과서 대목은 이해조의 강상련이고, 뺑덕어미와 장 승상 부인은 계열마다 다르다. 판본으로 다시 읽는 심청전.
심청전은 한 권의 책이 아니라 필사본·판각본·활자본을 합쳐 80여 종이 전하는 이야기이고, 판본 계열에 따라 뺑덕어미가 아예 나오지 않거나 심봉사의 이름이 다르기도 합니다. 우리가 중학교 교과서에서 읽은 대목도 원래의 판각본이 아니라 이해조가 완판본을 고쳐 쓴 《강상련》입니다. 공양미 삼백 석, 인당수, 연꽃, 맹인 잔치로 이어지는 줄거리는 누구나 알지만, 어떤 판본으로 읽느냐에 따라 같은 심청전이 꽤 다른 얼굴을 보여 줍니다. 이 글은 줄거리 요약 대신 그 차이를 따라가 봅니다.
작자도 연대도 모르지만, 18세기엔 이미 있었다
심청전은 작자 미상, 연대 미상의 고전소설입니다. 다만 조수삼(1762–1847)의 《추재집》에 전기수, 즉 직업적으로 소설을 읽어 주던 사람이 심청전을 읽었다는 기록이 있어서 학자들은 18세기에 이미 완결된 작품으로 존재했다고 봅니다. 판소리 쪽 기록으로는 순조 때 송만재가 쓴 《관우희》에 심청가가 등장합니다.
판소리가 먼저냐 소설이 먼저냐도 오래된 쟁점입니다. 판소리 《심청가》가 더 오래된 형태이고 소설은 그 사설에서 나왔다는 견해가 널리 퍼져 있지만, 소설이 먼저였다는 반대 주장도 있습니다. 판소리 사설과 거의 다르지 않은 본은 아예 '판소리계 소설'이라고 부르고, 무당이 굿에서 부르는 '심청굿 무가'라는 형태도 따로 있습니다. 한 이야기가 무가, 판소리, 소설이라는 세 갈래로 함께 살아온 셈입니다.
판각본 세 계열: 한남본, 송동본, 완판본
판각본은 크게 한남본 계열, 송동본 계열, 완판본 계열로 나뉩니다. 한남본 계열은 간결하고 소박한 산문체이고, 배경이 명나라 남군 땅이며, 심봉사의 이름은 '심현', 아내는 '정씨'입니다. 이 계열에는 장 승상 부인도, 뺑덕어미도, 안씨 맹인 이야기도 나오지 않습니다. 우리가 아는 심학규와 곽씨 부인은 송동본 계열에서 등장합니다. 배경도 송나라 시대의 황주 도화동으로 바뀌고, 곽씨 부인이 아이를 갖게 해 달라고 비는 대목, 뺑덕어미 이야기, 안씨 맹인 이야기가 이때 덧붙습니다.
완판본 계열은 송동본과 대체로 같지만 삽입 가요와 한시, 고사성어가 훨씬 많고, 장 승상 부인 이야기, 인당수까지의 항해 경로, 심봉사가 맹인 잔치에 가다가 부르는 〈방아타령〉 같은 대목이 더해집니다. 심봉사가 눈을 뜰 때 모든 맹인이 함께 눈을 뜨는 장면도 완판본 계열에 들어 있습니다. 영어권 연구에서도 한남본이 가장 이른 판본으로 여겨지고, 천상 선녀의 하강은 한남본, 뺑덕어미는 송동본, 장 승상 부인은 완판본의 특징으로 정리됩니다. 1997년에 나온 심청전 전집은 판소리 녹음과 사설까지 포함해 83종의 이본을 모았습니다.
뺑덕어미는 처음엔 없었다
그러니 "심청전 하면 뺑덕어미"라는 기억은 절반만 맞습니다. 뺑덕어미는 심청이 인당수에 빠진 뒤에 나타나 심봉사를 꾀어 혼인하고 돈을 빼돌리며, 맹인 잔치에 가는 길에는 황봉사와 눈이 맞아 달아납니다. 이 인물이 들어오면서 이야기의 무게중심이 조금 옮겨 갑니다. 여자에게 빠져 재산을 날리는 어리석은 심봉사의 모습은, 겉으로는 효를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당대 양반 문화와 현실을 비판하는 장치로 읽히기도 합니다. 한남본의 담담한 효행담과 완판본의 걸쭉한 판소리 소설은 이렇게 결이 다릅니다.
교과서 심청전의 정체, 《강상련》
활자본 시대로 넘어오면 1912년 이해조가 완판본의 문장을 다듬고 내용을 더하고 빼서 신소설처럼 바꾼 《강상련》이 나옵니다. 1913년에는 신문관에서 한남본 문장을 손질하고 송동본의 뺑덕어미 이야기를 더한 《심청전》이 나왔고, 이후 여러 출판사의 심청전은 대체로 《강상련》을 조금씩 손본 것이었습니다. 《강상련》은 '강 위의 연꽃'이라는 뜻으로, 《매일신보》에 33회에 걸쳐 연재되었고 같은 해 창극으로도 만들어졌습니다. 교과서 속 심청전이 유난히 매끄럽게 읽혔다면, 그건 20세기 초 작가의 손을 한 번 거친 문장이기 때문입니다.
심청 이야기의 뿌리
심청전의 원천으로는 《삼국사기》의 효녀 지은 이야기, 아버지를 위해 시주하고 뒤에 황후가 된 원홍장이 나오는 곡성 관음사 연기 설화, 그리고 《삼국유사》의 거타지 설화가 꼽힙니다. 거타지 설화에는 용이 사는 못에 사람을 남겨 두는 대목과 용이 꽃으로 변하는 대목이 있어 인당수와 연꽃을 떠올리게 합니다. 한 분석은 심청전 밑바닥에 개안 설화, 처녀 희생 설화, 영웅 설화라는 세 유형이 깔려 있다고 봅니다. 전라남도 곡성이 심청 축제를 열어 온 것도 관음사 연기 설화의 무대로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판소리 심청가, 눈 뜨는 대목
심청가는 춘향가, 흥보가, 적벽가, 수궁가와 함께 지금까지 전하는 판소리 다섯 바탕 가운데 하나로, 슬픔과 비극의 정서가 짙은 소리로 꼽힙니다. 명창들이 대대로 보탠 더늠 덕분에 예술적으로 크게 다듬어졌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가장 중요한 대목은 심봉사가 눈을 뜨는 장면인데, 이를 실감 나게 표현하려면 명창의 기량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이어 다른 맹인들도 눈을 뜨고 소리는 잔치 분위기로 끝납니다.
바다 밖으로 나간 심청
심청 이야기는 일찍부터 외국어로 옮겨졌습니다. 1889년 H. N. 알렌의 영어판 《Korean Tales》에 실렸고, 1895년에는 프랑스어판이 나왔습니다. 영화로는 신상옥 감독이 1972년 남한에서, 1985년에는 북한에 납치된 상태에서 두 번 만들었고, 2005년 애니메이션 〈왕후 심청〉과 2019년 유니버설발레단 공연으로도 이어졌습니다. 다음에 심청전을 다시 펼친다면, 지금 손에 든 책이 어느 계열에서 왔는지부터 확인해 보세요. 같은 이야기가 훨씬 입체적으로 보일 겁니다.
심청전으로 배우는 영어 표현
| 영어 | 뜻 | 예문 |
|---|---|---|
| filial piety | 효, 효심 | The tale celebrates filial piety. |
| regain one's sight | 시력을 되찾다, 눈을 뜨다 | Her father regained his sight. |
| sacrifice oneself | 자신을 희생하다 | She sacrificed herself for her father. |
| a variant text | 이본 | There are more than eighty variant texts. |
| be reunited with | ~와 다시 만나다 | She was reunited with her father. |
연습: "variant text"와 "be reunited with"를 써서, 판본마다 결말이 다른 이야기 하나를 영어 두 문장으로 소개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