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실은 무엇을 발명했을까? 관노에서 세종의 과학자가 된 사람
장영실은 동래현 관노 출신으로 세종의 기술자가 되어 자격루·혼천의·옥루를 만들었습니다. 측우기 발명설의 진실과 1442년 이후의 공백까지 정리했습니다.
장영실의 대표 발명품은 1434년에 완성한 자동 물시계 자격루입니다. 사람이 지켜보지 않아도 종·징·북을 스스로 울려 시각을 알렸습니다. 그 밖에 물레바퀴로 돌아가는 혼천의(1433), 천문 시계 옥루(1438)를 만들었고, 앙부일구 같은 해시계 제작과 금속활자 갑인자 주조에도 참여했습니다. 그런데 흔히 장영실의 발명품으로 알려진 측우기는 사정이 조금 다릅니다. 이 글에서는 확실한 기록과 전해지는 이야기를 나눠서 살펴봅니다.
동래현 관노, 생몰년부터 수수께끼
장영실은 생년과 몰년이 확실하지 않습니다. 1389–1390년 무렵 태어났다는 추정이 있지만 다른 설도 여럿입니다. 본래 동래현(지금의 부산 일대)의 관노였다고 전해지며, 아버지는 원나라 유민이라는 《세종실록》 기록과 고려 말 관리 장성휘라는 족보 쪽 주장이 함께 있습니다. 어머니가 관노였는지 기생이었는지도 자료마다 다릅니다.
조선은 신분이 대체로 어머니를 따라 대물림되는 사회였습니다. 관청에 속한 노비의 아들로 태어났다는 것은, 보통이라면 평생 그 신분을 벗어나기 어렵다는 뜻이었습니다. 다만 그는 젊어서부터 쇠붙이를 다루는 솜씨로 이름이 났고, 경상도에서 합금을 연구했다고 합니다.
태종이 발탁하고 세종이 키운 기술자
그의 재능을 처음 알아본 사람은 세종의 아버지 태종이었고, 세종이 그를 중용했습니다. 경력을 연도별로 보면 이렇습니다.
- 1421년 명나라에 파견되어 천문 기기를 배워 옴
- 1423년 노비 신분에서 벗어나(면천) 상의원 별좌에 임명
- 1424년 정5품 행사직으로 승진, 첫 물시계 제작
- 1433년 정4품 호군 관직을 더함
- 1434년 자격루 완성, 갑인자 주조 참여
- 1438년 옥루 완성, 흠경각에 설치
관노 출신이 벼슬을 받는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파격이었습니다. 신분을 중시하는 관료 사회에서 곱지 않은 시선이 있었으리라는 점은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자격루: 스스로 시각을 알리는 시계
조선에서 정확한 시각은 나라의 일이었습니다. 궁궐과 도성 문을 열고 닫는 일, 밤 순찰이 모두 시각에 따라 움직였습니다. 그런데 예전 물시계는 사람이 밤낮으로 지켜보다가 직접 시각을 알려야 했습니다.
자격루는 이 문제를 기계로 풀었습니다. 물이 일정한 속도로 그릇에서 그릇으로 흘러 수위가 오르면 장치가 연달아 움직여 구슬이 굴러가고, 인형이 종·징·북을 쳐서 시각을 알렸습니다. 제작 전에 중국에 가서 기존 설계를 연구했다고도 합니다. 원본은 남아 있지 않고, 지금 볼 수 있는 자격루는 당시 기록을 바탕으로 복원한 것입니다.
하늘을 재는 기구들
1433년에는 물레바퀴로 움직이는 혼천의를 만들었습니다. 이전의 천구의가 덜 정확했기 때문입니다. 유교 국가에서 왕은 하늘의 움직임에 맞춰 역법을 바로잡을 책임이 있었기 때문에, 천문 기구는 곧 정치의 도구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기구들은 1442년 완성된 역법 계산서 《칠정산》에도 쓰였습니다.
앙부일구는 하늘을 향해 놓인 솥처럼 오목한 청동 해시계입니다. 시각을 글자뿐 아니라 십이지 동물 그림으로도 표시해, 글을 모르는 백성도 시간을 알 수 있게 했습니다. 백성이 직접 쓸 수 있는 지식을 만들겠다는 생각은 몇 년 뒤의 훈민정음과도 닮았습니다.
측우기는 장영실의 발명품일까?
교과서나 위인전에서 측우기를 장영실의 발명으로 소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를 측우기와 직접 연결하는 기록은 없습니다. 기록상 측우기를 처음 제안한 사람은 세자 이향, 곧 훗날의 문종입니다. 장영실이 세운 과학 기술의 토대 위에서 나온 성과라고 말할 수는 있어도, 그가 직접 설계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갑인자도 마찬가지로 집현전 학자와 장인들이 함께 만든 결과물이었습니다.
부서진 가마, 사라진 마지막
장영실의 경력은 임금이 타는 가마가 부서진 사건으로 끝납니다. 의금부는 곤장 80대와 삭탈관직을 요구했고, 임금이 형벌을 두 등급 낮춰 주었다고 합니다. 그 뒤 그의 행적은 역사 기록에서 사라집니다. 영어권 자료는 이 사건을 1442년으로 적고 있습니다.
신분이 낮은 사람의 출세를 시기한 관료들이 있었다는 해석, 곧 세상을 떠났다는 추측, 조용히 살아남았다는 상상이 모두 있지만 확인된 것은 없습니다. 기록의 빈칸이 크기 때문에 2016년 KBS 드라마 《장영실》, 2019년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 같은 작품들이 그 빈칸을 이야기로 채워 왔습니다.
오늘의 장영실
장영실은 이순지·이천과 함께 조선 전기를 대표하는 과학자로 평가받습니다. 1990년 8월에는 '이 달의 문화 인물'로 선정되었고, 충남 아산에는 아산 장씨 집안의 가묘가 있습니다. 2018년 5월 19일에는 구글 첫 화면 로고(두들)에도 등장했습니다.
장영실로 배우는 한국어 표현
| 표현 | 뜻 | 예문 |
|---|---|---|
| 발탁되다 | 여럿 가운데서 뽑혀 중요한 자리에 쓰이다 | 그는 실력으로 궁궐 기술자에 발탁되었다. |
| 면천하다 | 노비 신분에서 벗어나 양인이 되다 | 장영실은 1423년에 면천되었다. |
| 시각을 알리다 | 지금이 몇 시인지 알려 주다 | 자격루는 스스로 시각을 알렸다. |
| 책임을 묻다 | 잘못에 대한 책임을 지게 하다 | 가마가 부서지자 조정은 그에게 책임을 물었다. |
| 행적이 끊기다 | 그 뒤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게 되다 | 그 사건 이후 그의 행적이 끊겼다. |
연습: '발탁되다'와 '책임을 묻다'를 넣어, 회사나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두 문장으로 써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