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 김구의 호 '백범'은 무슨 뜻일까? 치하포에서 경교장까지 따라가 본 생애

백범 김구의 호 '백범'은 무슨 뜻일까? 치하포에서 경교장까지 따라가 본 생애

백범 김구(1876–1949)의 호는 백정의 '백'과 범부의 '범'에서 왔습니다. 임시정부를 이끌고 분단에 반대하다 1949년 경교장에서 피살된 생애를 정리했습니다.

백범 김구의 호 '백범(白凡)'은 미천한 백성을 상징하는 백정의 '백'과 보통 사람을 뜻하는 범부의 '범'을 따서 지은 것입니다. 가장 낮은 자리에 있는 평범한 사람도 독립을 위해 나서야 한다는 뜻을 담았습니다. 김구(1876–1949)는 그 이름처럼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이끌었고, 광복 뒤에는 분단을 막으려 애쓰다 1949년 서울 경교장에서 숨졌습니다.

해주의 가난한 농가에서

김구는 1876년 8월 29일 황해도 해주의 한 마을에서 가난한 농가의 외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집안은 이미 오래전에 양반 신분을 잃은 상태였고, 어릴 때 이름은 김창암이었습니다.

동학 농민군에서 치하포 사건까지

1893년 동학에 들어간 그는 1894년 농민 봉기 때 부대를 이끌고 해주성을 공격했지만, 관군과 일본군에게 패했습니다.

1896년 3월, 치하포의 한 주막에서 그는 명성황후 시해에 관련되었다고 의심한 일본인 남성을 죽이고, 국모의 원수를 갚는다는 글을 남겼습니다. 김구는 그를 일본 육군 장교라고 믿었지만, 영어 위키백과는 오늘날 그가 쓰치다 조스케라는 민간인 상인이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라고 적고 있습니다.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고종이 집행을 재가하지 않아 목숨을 건졌고, 감옥에서 다른 죄수들에게 글을 가르치며 서양 역사와 과학 책을 읽었습니다. 1898년에는 탈옥했습니다.

교사, 기독교인, 그리고 다시 감옥

한동안 마곡사에서 승려로 지낸 뒤, 1903년 개신교 세례를 받고 교사와 교장으로 일했습니다. 1907년에는 신민회에 참여했습니다. 1911년 105인 사건으로 체포되어 15년형을 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고문을 당했으며, 1915년 가석방되었습니다. '김구'라는 이름은 이 수감 중이던 1912년에 쓰기 시작했습니다.

상하이 임시정부, 경무국장에서 주석까지

1919년 3·1 운동 뒤 상하이로 건너간 그는 임시정부의 경무국장으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1926년부터 1927년까지 정부 수반을, 1940년부터 1947년까지 주석을 맡았습니다. 1929년에는 자서전 『백범일지』 상권을 마쳤고, 이 책은 1947년 국사원에서 출간되었습니다.

한인애국단과 1932년

1931년 김구는 일본 제국과 식민 통치의 요인을 겨냥한 비밀 조직 한인애국단을 만들었습니다. 1932년 1월 이봉창은 도쿄에서 일왕 히로히토에게 수류탄을 던졌으나 빗나갔고, 같은 해 4월 윤봉길은 상하이 훙커우 공원 행사장에서 폭탄을 던져 일본 군과 식민 당국의 고위 인사들을 죽거나 다치게 했습니다. 두 사람은 모두 그해 처형되었습니다. 김구는 다른 한인들을 보호하려고 이 일의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고 공개적으로 밝혔습니다. 1940년에는 임시정부 아래 한국광복군이 정식으로 창설되었습니다.

광복, 그리고 분단에 맞서

1945년 11월 23일, 김구 등 15명은 정부가 아닌 개인 자격으로 귀국한다는 문서에 서명한 뒤 김포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그는 모스크바 3국 외상회의의 신탁통치안에 반대했고, 이승만과도 대립했습니다. 1948년 4월에는 평양으로 가 김일성과 통일 문제를 협의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고, 그해 남북에 각각 정부를 세우는 데 반대했습니다.

경교장의 총성과 남은 물음

1949년 6월 26일, 김구는 사저 경교장에서 육군 장교 안두희가 쏜 총에 맞아 세상을 떠났습니다. 향년 72세였습니다. 안두희는 김구를 소련의 첩자로 여겼다고 말했습니다. 배후에 대해서는 아직도 결론이 나지 않았습니다. 1992년 공개된 안두희의 고백은 이승만 정부의 안보 책임자 김창룡이 지시했다고 주장했고, 2001년 기밀 해제된 문서는 안두희가 미군 방첩대(CIC)를 위해 일했음을 보여 주었습니다. 다만 이 증거가 어디까지를 말해 주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장례는 대한민국 최초의 국민장으로 치러졌고, 그가 순국선열의 유해를 모시려고 조성한 효창동 묘역에 안장되었습니다. 1962년에는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습니다.

백범 김구로 배우는 한국어 표현

표현 뜻 예문
호를 짓다 본이름 말고 부를 이름을 만들다 그는 뜻을 담아 호를 지었다.
책임을 지다 일의 결과를 떠맡다 김구는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했다.
목숨을 건지다 죽을 위기에서 살아나다 그는 사형을 피해 목숨을 건졌다.
결론이 나지 않다 아직 답이 정해지지 않다 배후 문제는 결론이 나지 않았다.
평범한 사람 특별하지 않은 보통 사람 평범한 사람도 나라를 위해 나설 수 있다.

연습: 내 이름이나 별명에 담긴 뜻을 한국어 세 문장으로 소개해 보세요. '호를 짓다'처럼 '이름을 짓다'와 '뜻을 담다'를 한 번씩 써 보세요.

이 인물로 언어 배우기

주제별로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