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시황은 왜 병마용을 만들었을까? 중국 최초의 황제와 불로장생의 꿈
기원전 221년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은 문자와 화폐를 통일하고, 흙으로 빚은 군대와 함께 묻혔습니다. 병마용을 만든 까닭과 그의 생애를 정리했습니다.
기원전 221년 중국을 통일하고 스스로 첫 황제가 된 진시황은 여산 기슭의 거대한 무덤 단지의 일부로 병마용을 만들게 했습니다. 실제 사람만 한 흙 병사 수천 명은 저세상에서 황제를 따르고 지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1974년 우물을 파던 농부들이 처음 발견했고, 지금까지 약 6,000점이 발굴되었습니다. 이 군대는 황제 자신을 닮았습니다. 어마어마한 야심, 모든 것을 똑같이 맞추려는 집착, 그리고 오랫동안 벗어나려 한 죽음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전쟁의 시대, 소년 왕
진시황은 기원전 259년 한단에서 태어났고 이름은 영정이었습니다. 여러 나라가 패권을 다투던 전국 시대였습니다. 기원전 246년 열세 살 무렵 서쪽 진나라의 왕이 되었고, 기원전 235년에 실권을 쥐었습니다.
기원전 221년, 천하 통일
십 년쯤 걸려 진나라는 다른 나라들을 차례로 무너뜨렸고, 기원전 221년 왕은 모든 땅을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그는 새 시대를 알리려고 '황제'라는 칭호를 만들어 스스로를 '시황제(첫 황제)'라 불렀고, 이 칭호는 그 뒤 약 2천 년 동안 쓰였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로
가장 오래 남은 업적은 표준화입니다. 승상 이사와 함께 문자, 도량형, 화폐, 수레바퀴 축의 폭까지 통일했고, 옛 봉건제를 없애고 중앙에서 보낸 관리가 다스리는 군현제를 폈습니다. 특히 문자 통일이 중요했습니다. 지역마다 말은 달라도 같은 글자를 쓰면 글로는 통할 수 있었고, '말은 여럿이어도 글은 하나'라는 이 특징은 지금의 중국어에도 이어집니다.
길, 운하, 장성
그는 여러 나라의 성벽을 이어 만리장성의 전신을 쌓고, 길을 닦고, 기원전 214년 남쪽에 영거 운하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엄청난 수의 백성이 동원되었고 희생도 컸습니다.
분서와 '갱유'
엄한 법과 형벌을 강조하는 법가 사상을 나라의 이념으로 삼았고, 기원전 213년에는 의학·농업 같은 실용서를 뺀 대부분의 책을 불태우게 했습니다. 유학자들을 산 채로 묻었다는 '갱유' 이야기도 전해지지만, 최근 연구에서는 처형된 이들이 방사(연금술사)였을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불로장생의 꿈과 그 뒤
말년의 황제는 불로장생 약을 찾아 헤매다 여러 사기꾼에게 속았고, 수은이 든 약이 죽음을 앞당겼을지 모른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기원전 210년 동쪽 순행 길에 마흔아홉 살로 숨졌고, 신하들은 수도 함양에 돌아올 때까지 죽음을 숨겼습니다. 만대까지 가리라던 진나라는 몇 해 만에 무너졌습니다. 오늘날 시안 근처 갱도에는 보병, 궁수, 장교, 말과 전차가 전투 대형으로 늘어서 있고, 얼굴과 머리 모양, 갑옷이 하나하나 다릅니다. 전통 역사서는 그를 잔혹한 폭군으로 그렸지만 이는 주로 뒤를 이은 한나라의 시각이었고, 20세기 중반 이후 많은 학자가 이 평가를 다시 따져 보고 있습니다.
진시황으로 배우는 우리말 표현
| 표현 | 뜻 | 예문 |
|---|---|---|
| 천하를 통일하다 | 온 나라를 하나로 만들다 | 진시황은 천하를 통일했다. |
| 발을 맞추다 | 여럿이 행동을 같이하다 | 팀원들이 발을 맞춰 일했다. |
| 불로장생 | 늙지 않고 오래 삶 | 황제는 불로장생을 꿈꿨다. |
| 공과가 엇갈리다 | 잘한 점과 잘못한 점이 함께 있다 | 그의 통치는 공과가 엇갈린다. |
| 후대에 길이 남다 | 오랫동안 전해지다 | 그의 개혁은 후대에 길이 남았다. |
연습 과제: 내 공부 습관에서 '통일'할 수 있는 것을 하나 골라 "발을 맞추다", "후대에 길이 남다"를 넣어 세 문장으로 써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