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어떻게 일본을 손에 넣었을까? 아시가루의 아들에서 임진왜란까지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어떻게 일본을 손에 넣었을까? 아시가루의 아들에서 임진왜란까지

하급 무사 집안에서 태어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1590년 일본을 통일했지만, 임진왜란을 일으켜 조선에 큰 고통을 안겼습니다. 그의 출세와 몰락을 정리했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1537–1598)는 오다 노부나가의 부하로 출세해 1582년 노부나가가 죽은 뒤 주도권을 쥐었고, 남은 세력을 무너뜨리거나 끌어들여 1590년 오다와라 공략으로 일본 통일을 완성했습니다. 놀라운 것은 출발점입니다. 아버지가 하급 보병인 아시가루였던 농민 집안 출신으로 무사 가문도 아니었지만, 평민으로서 처음 조정의 최고 관직인 '간파쿠(관백)'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일본을 통일한 바로 그 야심이 조선 침략, 곧 임진왜란으로 이어졌습니다.

오와리의 '원숭이'

히데요시는 1537년 오와리국, 아마도 지금의 나고야에서 태어났습니다. 몸집이 작아 '작은 원숭이', '원숭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고 합니다. 태생이 신분을 정하던 사회에서 그가 가진 것은 행동력과 꾀, 그리고 사람 마음을 읽는 뛰어난 재주뿐이었습니다.

노부나가 밑에서

노부나가를 섬긴 그는 싸움마다 공을 세워 1573년 북오미 지역의 영주가 되었고, 이 무렵 하시바 히데요시라는 이름을 썼습니다. 노부나가의 짚신을 품에 넣어 데웠다는 유명한 일화는 기록된 사실이라기보다 전설에 가깝습니다.

1582년, 주군의 원수를 갚다

혼노지의 변으로 노부나가가 아케치 미쓰히데에게 죽었을 때 히데요시는 멀리 서쪽에서 싸우고 있었습니다. 그는 서둘러 적과 화해하고 놀라운 속도로 군대를 되돌려 야마자키 전투에서 미쓰히데를 꺾었습니다. 이어 시바타 가쓰이에를 물리치고 다른 경쟁자들을 제치며 사실상 일본의 지배자가 되었습니다.

평민이 정점에 오르다

쇼군은 특정 가문만 될 수 있었기에 그는 조정 관직이라는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1585년 간파쿠, 1586년 태정대신이 되었고, 뒤에 간파쿠 자리를 조카 히데쓰구에게 넘기고 '다이코(태합)'라 불렸습니다. 1585년 시코쿠, 1587년 규슈를 평정하고 1590년 오다와라 공략과 이듬해 반란 진압으로 전국을 손에 넣었습니다.

사회를 굳히다

밑바닥에서 올라온 그는 다른 사람이 같은 길을 걷지 못하게 했습니다. 1588년 '가타나가리(칼 사냥)'로 농민의 무기를 거두어 병사와 농민을 갈라놓았고, 전국적으로 토지 조사도 벌였습니다. 1583년 오사카성을 짓기 시작했고, 1587년에는 예수회 선교사를 추방하고 기독교를 금지했습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일본만으로 만족하지 못한 그는 명나라 정복을 노리며 1592년과 1597년 두 차례 조선을 침략했습니다. 초반에는 육지에서 빠르게 북상했지만, 조선 의병과 관군의 저항, 명나라의 참전, 그리고 이순신이 이끈 조선 수군 때문에 침략은 막혔습니다. 이 전쟁은 조선에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을 남겼고 일본에도 아무것도 남기지 못했으며, 히데요시가 죽은 뒤 일본군은 물러났습니다.

너무 어린 후계자

1595년 그는 후계자였던 조카 히데쓰구를 죽음으로 몰고 어린 아들 히데요리를 후계자로 삼았습니다. 1598년 9월 18일 후시미성에서 세상을 떠나며 유력 영주들이 히데요리를 받치게 했지만, 결국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이겨 250년 넘게 이어질 막부를 열었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로 배우는 우리말 표현

표현 뜻 예문
입신양명 출세하여 이름을 널리 알림 그는 입신양명을 꿈꿨다.
개천에서 용 난다 어려운 환경에서 큰 인물이 나옴 그의 출세는 개천에서 용 난 격이었다.
과욕을 부리다 지나치게 욕심내다 과욕을 부리다 일을 그르쳤다.
사다리를 걷어차다 자기가 오른 길을 남이 못 오게 막다 그는 출세한 뒤 사다리를 걷어찼다.
권불십년 권력은 오래가지 못함 권불십년이라더니 그 집안도 무너졌다.

연습 과제: 첫 단어부터 오늘까지 내 외국어 실력이 '출세'해 온 이야기를 "개천에서 용 난다", "과욕을 부리다"를 넣어 세 문장으로 써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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