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에고 벨라스케스는 어떤 화가일까? '화가들의 화가'의 생애와 대표작

〈시녀들〉을 그린 스페인 궁정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 세비야의 견습 시절부터 펠리페 4세의 화가가 되기까지, 대표작과 마네가 그를 존경한 이유를 정리합니다.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대표작으로는 〈달걀을 부치는 노파〉, 〈브레다의 항복〉, 〈교황 인노켄티우스 10세의 초상〉, 그리고 무엇보다 〈시녀들〉(1656)이 꼽힙니다. 그는 바로크 시대 펠리페 4세의 궁정을 이끌던 화가였고, 〈시녀들〉은 그 작업의 절정으로 평가됩니다. 19세기에는 사실주의와 인상주의 화가들의 본보기가 되었고, 마네는 그를 '화가들의 화가'라고 불렀습니다.

세비야에서 보낸 견습 시절

벨라스케스는 1599년 6월 6일 스페인 안달루시아의 세비야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아버지는 공증인이었고, 친가 조부모는 포르투갈에서 세비야로 건너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일찍부터 재능을 보인 그는 1611년 세비야의 화가이자 교사 프란시스코 파체코와 6년짜리 견습 계약을 맺었습니다. 파체코에게서 고전과 비례, 원근법을 배웠고, 1618년 4월 23일에는 스승의 딸 후아나 파체코와 결혼했습니다.

초기 작품은 부엌 풍경과 정물을 함께 그린 '보데곤'이었습니다. 그는 이런 그림을 그린 최초의 스페인 화가 중 한 명이었고, 1618년 작 〈달걀을 부치는 노파〉에는 이미 놀라운 사실 묘사 솜씨가 드러납니다.

펠리페 4세의 궁정화가가 되다

1622년 12월 왕이 아끼던 궁정화가가 세상을 떠나자, 실력자였던 올리바레스 백작 공작이 세비야의 젊은 화가를 마드리드로 불러들였습니다. 그 뒤 그는 스페인 왕족 중 다수의 초상화를 그렸고, 한 집계에 따르면 펠리페 4세의 초상만 서른네 점에 이릅니다.

1628년에는 플랑드르의 거장 루벤스가 외교 사절로 마드리드에 머물렀습니다. 루벤스는 벨라스케스를 높이 평가했고, 그에게 이탈리아의 명화를 직접 보고 싶다는 열망을 불어넣었습니다. 그는 1629년부터 1631년까지 1년 반 동안 미술 공부와 여행을 위해 이탈리아에서 지냈고, 1649년에 다시 이탈리아로 떠났습니다.

〈브레다의 항복〉: 굴욕 없는 승리

1634~1635년에 그린 〈브레다의 항복〉은 그가 남긴 그림 가운데 당대 역사를 다룬 유일한 작품입니다. 보통은 말 위의 장군이 무릎 꿇은 적장을 내려다보는 구도로 그리지만, 벨라스케스는 스페인 장군이 네덜란드 장군과 대등하게 마주 선 모습으로 그렸습니다. 승리를 그리면서도 상대를 깎아내리지 않은 셈입니다.

두 번째 이탈리아 여행과 교황의 초상

1649년 두 번째 이탈리아 여행에는 조수 후안 데 파레하가 함께했습니다. 파레하는 당시 노예 신분이었고, 벨라스케스에게서 그림을 배웠습니다. 로마에서 그린 〈교황 인노켄티우스 10세의 초상〉은 큰 호평을 받아, 교황은 그에게 메달과 금목걸이를 내렸고 영국 화가 레이놀즈는 이 그림을 로마에서 가장 훌륭한 그림으로 여겼습니다.

〈시녀들〉과 말년

말년의 두 걸작은 왕실 가족을 그린 집단 초상 〈시녀들〉과, 여신 미네르바가 베 짜는 여인 아라크네를 벌하는 신화를 그린 〈실 잣는 여인들〉입니다. 〈시녀들〉 속 화가의 가슴에는 산티아고 기사단의 붉은 십자가가 그려져 있습니다. 왕이 직접 그려 넣었다는 이야기가 전하지만, 벨라스케스가 실제로 기사 작위를 받은 것은 그림을 완성하고 3년 뒤였습니다.

그는 1660년 8월 6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묻힌 산후안 바우티스타 성당은 1809년 무렵 프랑스군에 의해 파괴되어, 지금은 무덤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왜 '화가들의 화가'일까

그의 그림은 오랫동안 스페인 왕실 소장품으로 남아 있었기 때문에 세계적인 화가로 인정받은 것은 1850년 무렵으로 늦었고, 명성이 절정에 이른 때는 인상주의 시대인 1880~1920년이었습니다. 마네는 그의 그림이 지닌 생생한 붓질에 감탄했고, 20세기에는 피카소, 달리, 프랜시스 베이컨이 그의 대표 이미지를 새롭게 해석했습니다. 왕실 소장품이던 작품 대부분은 지금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에서 볼 수 있습니다.

벨라스케스로 배우는 표현

표현 뜻 예문
두각을 나타내다 재능이 뛰어나 눈에 띄다 그는 젊은 나이에 두각을 나타냈다.
눈에 들다 마음에 들어 인정받다 그는 왕의 눈에 들어 궁정화가가 되었다.
대등하게 마주하다 같은 위치에서 서로 대하다 두 장군이 대등하게 마주하고 있다.
청출어람 제자가 스승보다 나음 파체코에게 벨라스케스는 청출어람이었다.
이름을 남기다 후대에 이름이 전해지다 그는 미술사에 큰 이름을 남겼다.

연습: '두각을 나타내다'와 '이름을 남기다'를 넣어 좋아하는 화가를 세 문장으로 소개해 보세요.

디에고 벨라스케스 이야기로 언어 배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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