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개토대왕의 업적은 무엇일까? 20년 만에 고구려를 동북아 강국으로 만든 왕
광개토대왕(374–412)은 백제·후연·거란 등을 상대로 정복 전쟁을 벌여 고구려 영토를 크게 넓혔습니다. 연도별 정복 활동과 광개토대왕릉비 논쟁까지 정리했습니다.
광개토대왕의 가장 큰 업적은 391년부터 412년까지, 약 20년의 재위 기간에 고구려의 영토를 크게 넓혀 동북아시아의 강국으로 만든 것입니다. 남쪽으로는 백제를 굴복시키고 한강 유역까지 내려왔으며, 서쪽으로는 후연과 싸워 요동 지역 전체를 차지했습니다. 독자적인 연호 '영락'을 쓴 것도 중요한 업적으로 꼽힙니다. 시험에 자주 나오는 내용이지만, 연도와 숫자를 하나씩 따라가 보면 훨씬 입체적인 인물이 보입니다.
할아버지의 죽음과 열일곱 살의 즉위
광개토대왕은 374년에 태어났고 이름은 고담덕입니다. 아버지는 고국양왕이고, 할아버지 고국원왕은 371년 백제와 싸우다 전사했습니다. 나라가 큰 상처를 입은 직후에 자란 왕자였던 셈입니다.
391년, 열일곱 살 무렵 왕위에 오른 그는 '영락'이라는 연호를 쓰고 '태왕'이라는 칭호를 사용했습니다. 중국 왕조와 대등하다는 뜻을 담은 선택이었습니다. 정식 시호는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으로, 줄여서 '호태왕'이라고도 부릅니다.
연도로 보는 정복 활동
정복 활동을 연도순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연도 | 상대 | 내용 |
|---|---|---|
| 392 | 백제 | 4만 군사로 성 10곳을 빼앗음 |
| 395 무렵 | 거란 | 요하 유역의 거란 일파를 정벌 |
| 395–396 | 백제 | 위례성까지 진격, 아신왕 항복 |
| 398 | 숙신 | 북동쪽 숙신을 복속 |
| 400 | 신라 구원 | 5만 군사를 보내 백제·가야·왜 연합에 맞섬 |
| 400–406 | 후연 | 공격을 막아 내고 성을 빼앗아 요동 장악 |
| 404 | 왜 | 옛 대방 지역에서 왜의 공격을 물리침 |
| 407 | — | 5만 군사로 대승, 갑옷 약 1만 벌 노획 |
| 410 | 동부여 | 동부여 공격 |
백제와의 싸움에서 아신왕은 왕자와 대신 10명을 인질로 내주며 항복했습니다. 신라를 도운 뒤에는 고구려에 머물던 신라 왕족 실성을 돌려보내 402년에 왕위에 오르게 했습니다. 다만 백제 정벌의 해가 자료에 따라 395년과 396년으로 다르고, 407년 싸움의 상대가 누구였는지도 분명하지 않다는 점은 알아 두면 좋습니다.
정복 군주만은 아니었다
393년에는 평양에 절 아홉 곳을 세웠다고 전해집니다. 이전 왕 소수림왕이 받아들인 불교를 이어서 후원한 것입니다. 그는 412년 서른여덟 살 무렵 병으로 세상을 떠났는데, 어떤 병이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뒤를 이은 아들 장수왕은 무려 79년 동안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광개토대왕릉비: 6미터짜리 역사책
414년, 장수왕은 아버지의 무덤 근처에 비석을 세웠습니다. 지금의 중국 지린성 지안(집안)에 있는 이 비석은 하나의 화강암 덩어리로 만들어졌고, 높이는 약 6.39미터입니다. 글은 모두 한문이며 글자 수는 셈법에 따라 1,775자 또는 1,802자로 봅니다.
비문은 세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시조 추모(주몽)의 건국 신화와 왕실 계보, 광개토대왕의 정복 기록, 그리고 왕릉을 지키는 수묘인 명단입니다. 오랫동안 잊혔던 비석은 1876년 무렵 진흙과 수풀 속에서 다시 발견되었고, 1882년 덮인 풀을 불태우는 과정에서 표면이 상했습니다. 1883년에는 일본 육군 장교 사코 가게아키가 비문을 베낀 사본을 손에 넣었습니다. 2004년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신묘년 기사' 논쟁
391년과 관련된 이른바 '신묘년 기사'는 해석이 갈리는 대표적인 구절입니다. 비문에 구두점이 없고 읽을 수 없는 글자도 있어서, 일본 학계는 전통적으로 주어를 '왜'로, 한국 학계는 대체로 고구려로 읽어 왔습니다.
1972년 재일 사학자 이진희는 비문이 석회로 일부러 고쳐졌다는 변조설을 내놓았습니다. 그러나 이후 중국 학자가 1881년 이전에 뜬 탁본을 찾아내면서, 지금은 중국 학자 대부분과 일부 한국·일본 학자가 변조설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결론이 하나로 모이지 않았다는 것 자체가, 고대 문자 자료를 읽는 일이 얼마나 까다로운지를 보여 줍니다.
오늘날의 광개토대왕
해군의 광개토대왕급 구축함이 그의 이름을 따랐고, 경기도 구리시에는 동상과 비석 복제품이 서 있습니다. 국제태권도연맹(ITF)의 품새 '광개'는 391년을 기려 39동작으로 되어 있습니다. 드라마 《태왕사신기》(2007), 《광개토태왕》(2011–2012)에서도 주인공으로 그려졌습니다.
광개토대왕으로 배우는 한국어 표현
| 표현 | 뜻 | 예문 |
|---|---|---|
| 왕위에 오르다 | 왕이 되다 | 광개토대왕은 391년에 왕위에 올랐다. |
| 영토를 넓히다 | 나라의 땅을 크게 하다 | 그는 요동까지 영토를 넓혔다. |
| 원군을 보내다 | 도와주는 군대를 보내다 | 고구려는 신라에 원군을 보냈다. |
| 해석이 갈리다 | 사람마다 뜻을 다르게 풀이하다 | 신묘년 기사는 해석이 갈린다. |
| 뒤를 잇다 | 앞사람의 자리나 일을 이어받다 | 장수왕이 아버지의 뒤를 이었다. |
연습: '왕위에 오르다'와 '뒤를 잇다'를 넣어, 좋아하는 역사 인물을 두 문장으로 소개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