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어떻게 천하를 얻었을까? 인질 소년이 260년 막부를 열기까지
어린 시절 인질로 지낸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노부나가와 히데요시의 시대를 견뎌 내고 1600년 세키가하라에서 이겨 1868년까지 이어진 에도 막부를 열었습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1543–1616)는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이긴 뒤 1603년 쇼군이 되었고, 그가 연 에도 막부는 1868년 메이지 유신 때까지 일본을 다스렸습니다.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이은 일본 '세 통일자'의 마지막 인물이자, 그 성과를 가장 오래 남긴 사람입니다. 그의 가장 큰 무기는 인내였습니다. 인질로 보낸 어린 시절을 견뎠고, 자신보다 화려한 두 사람을 섬기며 그들보다 오래 살아남았고, 때가 무르익었을 때에만 단호하게 움직였습니다.
인질로 보낸 어린 시절
이에야스는 1543년 미카와국 오카자키성에서 태어났고 어릴 적 이름은 마쓰다이라 다케치요였습니다. 마쓰다이라 가문은 강한 이웃 사이에 끼인 작은 집안이었고, 그는 어린 나이에 처음에는 오다 가문, 다음에는 이마가와 가문에 인질로 보내졌습니다. 남의 정치판에서 장기 말로 지낸 세월이 그에게 신중함과 관찰력, 기다림의 가치를 가르쳤을 것입니다.
오케하자마 이후 독립
1560년 이마가와 요시모토가 오케하자마에서 오다 노부나가에게 죽자, 이에야스는 이마가와 가문에서 벗어나 1562년 노부나가와 동맹을 맺었고 이 동맹은 20년 동안 이어졌습니다. 늘 이긴 것은 아닙니다. 1573년 미카타가하라 전투에서는 다케다 신겐에게 크게 졌고, 다케다 가문은 1582년에야 무너졌습니다.
히데요시를 섬기고 에도로
1582년 노부나가가 죽은 뒤 이에야스는 끝까지 맞서기보다 히데요시를 섬기는 길을 택했습니다. 1590년 히데요시는 그를 동쪽 간토 지방으로 옮겼고, 이에야스는 에도라는 작은 성시를 근거지로 삼았습니다. 그곳이 지금의 도쿄입니다. 좌천처럼 보였던 이 이동은 넓고 풍요로운 영지를 안겨 주었고, 다른 영주들을 지치게 한 조선 침략과도 거리를 두게 해 주었습니다.
1600년 세키가하라
1598년 히데요시가 죽자 어린 히데요리와 유력 영주들의 합의 체제가 남았고, 그중 가장 강한 이가 이에야스였습니다. 도요토미 가문에 충성하는 세력과의 갈등은 전쟁으로 번졌고, 1600년 10월 양측은 세키가하라에서 맞붙었습니다. 싸움 도중 상대편에서 결정적인 배반이 나오면서 이에야스의 동군이 크게 이겼습니다.
쇼군, 그리고 긴 평화
1603년 쇼군이 된 그는 겨우 2년 뒤인 1605년 아들 히데타다에게 쇼군 자리를 물려주면서도 죽을 때까지 실권을 쥐었습니다. 쇼군 자리가 도쿠가와 가문의 것임을 세상에 보여 준 영리한 수였습니다. 1614~15년 오사카 전투로 도요토미 가문을 무너뜨리고 1616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곁에는 1600년 일본에 표류해 온 영국인 항해사 윌리엄 애덤스도 있었는데, 그는 이에야스의 조언자가 되어 무사 신분까지 받았습니다.
영주들에게 상과 벌을 세밀하게 나눈 그의 체제는 200년 넘는 평화를 떠받쳤고, 후계자들은 뒤에 '쇄국'이라 불리는 대외 정책을 폈습니다. "울지 않는 두견새"를 두고 노부나가는 죽이고, 히데요시는 울게 만들고, 이에야스는 울 때까지 기다린다는 일본의 하이쿠는 후대에 지어진 것이지만, 왜 마지막에 천하를 얻은 사람이 이에야스였는지 잘 보여 줍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로 배우는 우리말 표현
| 표현 | 뜻 | 예문 |
|---|---|---|
| 때를 기다리다 | 알맞은 기회가 올 때까지 참다 | 그는 서두르지 않고 때를 기다렸다. |
| 고진감래 | 고생 끝에 즐거움이 옴 | 고진감래라더니 드디어 말이 트였다. |
|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다 | 확실한 일도 조심하다 | 그는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는 사람이었다. |
| 최후에 웃는 자가 승자 | 마지막에 이긴 사람이 진짜 이긴 것 | 최후에 웃은 사람은 이에야스였다. |
| 급할수록 돌아가라 | 서두를수록 안전한 길로 | 급할수록 돌아가라, 기초부터 다시 하자. |
연습 과제: 오래 공들이고 있는 공부 하나를 떠올려 "고진감래"와 "급할수록 돌아가라"를 넣어 세 문장으로 써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