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유는 왜 '시불(詩佛)'이라 불릴까? 시 속에 그림이 있는 당나라 시인·화가 이야기
이백이 시선, 두보가 시성이라면 왕유는 시불입니다. 불교에 깊이 빠져 고요한 산수를 노래한 당나라 시인이자 화가 왕유의 삶과 작품을 정리했습니다.
왕유가 '시불'이라 불리는 것은 그가 말년에 선불교에 깊이 몸담았고, 그 수행이 시에 크게 스며들어 세상을 떠난 뒤 '시인 부처'라는 이름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왕유는 중국 성당 시대의 시인이자 화가로, 자는 마힐(摩詰)입니다. 그는 음악가이자 관리이기도 했고, 그의 시는 약 400편이 남아 있으며 그 가운데 29편이 유명한 선집 『당시삼백수』에 실려 있습니다. 술과 자유의 시인 이백, 양심의 시인 두보 곁에서 왕유는 고요의 시인이었습니다.
이름부터 불교에서 왔다
왕유의 어머니 최씨는 북종선의 고승 보적을 스승으로 모신 독실한 불교 신자였고, 왕유도 그런 어머니의 영향 속에서 자랐습니다. 그의 자 '마힐'도 『유마경』의 주인공인 유마힐 거사의 이름에서 따온 것입니다. 『유마경』은 유마힐이 '공(空)'의 가르침을 전하고 마지막에는 말 없는 침묵으로 진리를 보여 주는 경전입니다. 고요한 산과 물을 노래한 시인에게 잘 어울리는 이름입니다. 그는 훗날 채식을 하는 독실한 선불교 신자가 되었고, 선사 도광에게서 10년 동안 배웠습니다.
수도를 사로잡은 재주꾼
왕유는 열다섯 살 무렵부터 수도에서 공부했고, 현종의 형 영왕과 동생 설왕에게서 스승이나 벗처럼 대접받을 만큼 이름을 떨쳤습니다. 효심과 우애가 깊었고 서예에도 뛰어났으며, 특히 비파 솜씨가 좋았습니다. 그림 속 악사만 보고 그 악사가 연주하는 곡이 「예상우의」 제3첩의 첫 박자라고 맞혔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과거 시험에 얽힌 일화도 있습니다. 『집이기』에 따르면, 장원 자리가 권세 있는 공주의 힘으로 다른 사람에게 내정되자, 기왕이 왕유를 악사로 꾸며 그 공주에게 보냈습니다. 외모와 비파 솜씨, 시 짓는 재주를 모두 갖춘 그를 본 공주는 결국 왕유를 장원으로 삼게 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전설에 가깝지만, 그가 얼마나 다재다능했는지를 보여 줍니다.
망천 별장과 『망천집』
왕유는 관리 봉급에 화가로서의 수입까지 더해 장안 남쪽 남전에 있는 넓은 별장 '망천장'을 사들였습니다. 이곳을 배경으로 왕유가 쓴 절구 20수와, 친구 배적이 같은 제목으로 화답한 시를 묶은 것이 『망천집』입니다. 유명한 「녹채(鹿柴)」도 여기에 들어 있습니다. 겉으로는 소박해 보이지만 읽을수록 깊이가 드러나는 시들입니다.
어머니를 잃은 슬픔
747년 무렵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왕유는 별장에 어머니를 모시는 사당을 짓고 전통에 따라 3년 동안 상을 치렀습니다. 너무 슬퍼한 나머지 뼈만 남을 정도로 야위었다고 합니다.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신앙과 망천의 고요한 자연이 만나는 곳에서, 왕유만의 시 세계가 자라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안사의 난과 반역죄
755년 안사의 난이 일어나고 이듬해 반란군이 장안을 점령했을 때, 황제와 대부분의 관리는 이미 피란한 뒤였지만 왕유는 이질에 걸려 움직이지 못하고 붙잡혔습니다. 뤄양으로 끌려간 그는 협력을 피하려고 귀가 안 들리는 척했다거나 약을 먹어 목소리를 상하게 했다고도 전해지지만, 끝내 반란 정부의 관직을 받았습니다.
757년 당나라가 뤄양을 되찾자 왕유는 반역죄로 갇혔습니다. 그를 살린 것은 고위 관리였던 동생 왕진의 도움과, 포로로 있으며 쓴 시였습니다. 그 시가 당나라에 대한 충성의 증거로 받아들여진 것입니다. 이후 그는 다시 벼슬길에 올라 761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상서우승을 지냈습니다.
시 속의 그림, 그림 속의 시
송나라 시인 소동파는 왕유의 시에는 그림이 있고, 그의 그림에는 시가 있다고 평했습니다. 아쉽게도 왕유가 그렸다고 확인된 그림은 한 점도 남아 있지 않지만, 그는 오랫동안 중국 산수화 남종화의 시조로 여겨져 왔습니다. 시에서는 맹호연과 함께 산수시를 대표해 둘을 '왕맹'이라 불렀고, 특히 네 줄짜리 절구의 대가로서 물과 안개가 어린 고요한 풍경을 적은 말로 그려 냈습니다.
그의 시 「위성곡」은 훗날 유명한 선율 「양관삼첩」으로 이어졌습니다. 세상을 떠나기 전 그는 붓과 먹을 청해 동생과 친구들에게 편지를 쓴 뒤 눈을 감았고, 남전의 별장에 묻혔습니다.
그의 영향은 멀리까지 퍼졌습니다. 맹호연에게 보낸 시 「송별」의 독일어 번역은 작곡가 말러의 『대지의 노래』 마지막 악장 「고별」의 가사가 되었습니다.
왕유로 배우는 한국어 표현
| 표현 | 뜻 | 예문 |
|---|---|---|
| 고요하다 | 조용하고 잠잠하다 | 새벽의 산사는 고요했다. |
| 그림 같다 | 경치가 매우 아름답다 | 강가의 저녁 풍경이 그림 같았다. |
| 다재다능하다 | 여러 방면에 재주가 많다 | 왕유는 시·그림·음악에 다재다능했다. |
| 속세를 떠나다 | 복잡한 세상일에서 벗어나다 | 그는 말년에 속세를 떠나 살고 싶어 했다. |
| 행간을 읽다 | 글에 드러나지 않은 뜻을 알아채다 | 왕유의 시는 행간을 읽어야 맛이 난다. |
연습 과제: 좋아하는 조용한 장소를 "고요하다"와 "그림 같다"를 넣어 세 문장으로 묘사해 보세요.